일본에서 매일매일 수수께끼를 만들다

창작노트

탈출 게임: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

ponomae 2025. 10. 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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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 방탈출 회사에서 협업이나 로컬라이즈에 관한 연락이 온다.
나도 그 회의에 불려서 이야기를 듣거나 직접 메일로 연락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느끼는 점, 의문으로 생각하는 점이 많다.
무엇보다 내가 한국인을 생각보다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과 한국의 방탈출 방식은 아주 다르다.
 

탈출 게임의 형식

한국은 상하이식이라고 불리는 전자기믹이 아주 참신하고 내장이 아주 리얼한 장소에서, 정말 말그대로 "탈출" 자체가 목표다.
 
일본에서는 탈출게임이라고 하면 홀형과 룸형으로 나뉜다.
홀형은 4명팀이 5~20팀 정도 들어가는 홀에서 일시로 시작하는 게임.
룸형은 한국과 비슷하게 여러 기믹이 있는 룸에서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
일본에서는 홀형이 더 일반적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홀형이 많은데 협업이라고 하면 룸형을 예상을 하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좀 곤란할 때가 많다.
 
홀형이 일본에서만 성공한 이유는 추측할 수 밖에 없는데,
우선 일본에서 그런 형식으로 할수 밖에 없었던 건, 룸형을 많이 만들기에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지진이 많은 나라라 그런지 소방법이 엄격해서 실내에 조그만 방을 많이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한국에 연수여행 같이 간 도구제작 담당자 말로는, 한국 방탈출을 일본에 가져가려면 방마다 스프링쿨러를 달고 뭐 하는 게 예산이 어마어마할 듯하다고 꿈도 못 꾸겠단다)
 
또, 일본에서는 워낙 동인활동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플레이어들의 상상력에 의존해도 군말 없이 받아들여 준다.
처음부터 동인들이 홀을 만들기에는 어렵고 해서 홀로 발전한 거 아닐까라고 추측되는데,
같은 홀에 사람이 몇십 명 같이 있어도 "이 우주엔 자네들밖에 없어. 자네들이 우주를 지켜야 해!"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금방 몰입해 준다.
 
이걸 15년 전부터 간단히 꾸민 작은 홀이나 대학 강의실에서 해도 군말 없이 해왔던 플레이어들이기에 지금도 그게 통용되고 있다는 것.
 
일본에서는 15년간 계속 그래왔으니 탈출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혼자 가서 모르는 사람이랑 매칭하기도 하는데,
한국에서 방탈출이 10년간 인기가 있다가 갑자기 모르는 사람들이랑 해야 하는 홀형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거 같다는 의견도 있다.
(그룹을 만들어서 오면 되긴 하지만, 다들 그러기는 어렵고,
제작자는 네 명이서 하는 걸 전제로 만들기 때문에 1-3명 팀으로 하면 어려운 점도 있다)
 

언어 의존 퍼즐

하나 더 곤란한 점은 일본의 퍼즐은 히라가나, 가타카나, 한자가 있는 일본어 완전히 의존한 퍼즐이 많다는 것.
 
예를 들어 타누키 나조라는 보편적인 퍼즐이 있는데,
예시:

かたたたき(카타타타키)

 
타누키(너구리)라는 말이 "타" + 뺀다(抜く 누쿠)의 동명사형 "누키"로 되어있기 때문에,
"카타타타키"에서 "타"를 빼서 답은 "카키(감 혹은 굴 동음이의어)".
 
이런 말이 아주 많아서 그걸 활용한 퍼즐이 아주 많다.

(이건 응용편)

 

오늘은 하츠모우데

요요기 하치만이라는 신사에 하츠모우데 (새해 첫 참배)에 갔다 왔다.2일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많았다.참배를 하고 나서는 당고.2025년도 좋은 한 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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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는 오십음표(五十音表)라는 일본의 가나를 소리로 나눈 표가 있는데,
이것도 아주 보편적이어서 이 표를 쓴 퍼즐도 많다.

 

오십음표 (각 행은 같은 모음, 각 열에는 같은 자음의 글자가 들어간다)

예를 들어,
い(이) + ← 는 "이"의 왼쪽에 있는 글자라는 뜻이라서, "き(키)"가 답이다.
 
이걸 응용한 퍼즐도 아주 많다.
 
이런 식으로 일본어 특유의 룰을 이용한 퍼즐이 많아서 로컬라이즈가 불가능은 아니지만, 거의 재창조가 필요할 만큼 힘들 것 같다.
 

복선 회수형 구성

일본에서는 홀형이라는 한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하는 퍼즐이 많기 때문에 퍼즐의 재활용도 많다.
이게 한국의 제작자 분들에게 평가받는 점이기도 한데, 처음에 나왔던 퍼즐을 게임 후반에 나온 새로운 정보로 또다시 풀 수 있다.
 
예를 들어,

かたたたき(카타타타키)

 
아까 풀었던 이 퍼즐을 "카키"라고 풀었는데, 게임 중반에서, 여기는 지구가 아니라 구지라는 평행세계고,
구지에서 얘는 "타누키"가 아니라 "카타나시 ('카'와 '타'가 없다)"라고 불리니까, 답은 "키"고,
 
구지에서는 오십음표가 세로로 길기 때문에 "이"의 왼쪽에는 "아(あ)"가 있고...
그래서 그래서 답이 다 달라지고... 사실은 이 타누키가!
 
이런 복선 회수형 퍼즐이 많다.
 
한국이나 방탈출이 주류인 다른 나라에서는 방을 이동하기 때문에 그런 퍼즐의 "재활용"은 많이 없다고 들었다.
 

마지막으로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고 더 생각나면 추가해야 되겠다.
 
하여튼 한국에서도 퍼즐의 재활용이나 룸 말고도 여러 형식을 제작하려 하는 곳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일본에서 15년 걸쳐서 플레이어들을 "교육"해서 (가르치다 라기보다는 제약에 있는 탓에 홀형식의 콘텐츠의 공급이 많아져서 플레이어들의 프레임이 홀형식에 맞춰진 것) 만들어낸 이 형식을 한국으로 바로 가지고 가기에는 어려운 점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퍼즐이나 머리를 쓰는 레저를 즐기는 사람은 일본도 한국도 많기 때문에,
일본 형식의 재밌는 점은 한국사람들한테도 맞지 않을까 싶다.
형식이 새로워서 조금 거부감이 있을 뿐.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과 매칭하지 않도록 하거나, 룸+홀형 (룸 투어나 룸 동시 진행) 등부터 시작해 가면 좋지 않을까.
 
홀형은 홀형대로 제작자의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즐거운 콘텐츠가 아닌가 싶다.
(물리적인 제약이 많이 없고 세계관을 만드는 것도 지면으로 하면 되기 때문에)
 
한편 일본에는 한국식, 상하이식 탈출게임도 많이 들어왔음 한다.
역시 물리적인 자극도 순수한 즐거움을 많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일본의 탈출 게임 제작회사에 입사하고 반년

 

입사하고 반년. 일본의 탈출 게임이란?

오랜만에 쓰는 글.새로운 회사에 들어온 뒤 반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두 개의 콘텐츠에서는 서브 디렉터로, 하나의 콘텐츠는 디렉터 (제작총지휘)를 맡았다. 참가자가 수천 명 단위로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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